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이 12세 (문단 편집) === [[메리 튜더]] === [[파일:MaryTudorQueenofFrance-e1425662050856-787x1024.jpg|width=400]] 1496년 3월 18일 - 1533년 6월 25일 (37세) 두 번째 왕비인 [[안 드 브르타뉴]]와의 사이에서 적법한 남자 후계자를 얻지 못한 루이 12세는 자신보다 34세나 어린 잉글랜드의 왕녀 [[메리 튜더]]와 3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. 메리 튜더는 [[헨리 8세]]의 여동생이자 [[헨리 7세]]와 [[요크의 엘리자베스]]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이었다. 메리의 오빠인 헨리 8세는 여동생 메리와 사이가 좋았다고 하며, 메리를 아껴 자신의 딸의 이름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[[메리 1세|메리]]로 지었다고 한다[* 헨리 8세가 자신의 장녀인 메리 왕녀(훗날 메리 1세)를 박대했다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, 사실 앤 불린을 만나기 전에는 아라곤의 캐서린과 메리 모녀를 매우 총애했다. 그러니 아끼는 여동생의 이름을 따서 장녀의 이름을 지은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.]. 또한 군함의 이름을 '메리 로즈'로 명하기도 했다. 메리는 '''당대 유럽 제인의 미인'''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외모가 아름다웠기에 의붓 사위이자 여자를 밝히기로 유명한 다음번 왕인 [[프랑수아 1세]]가 찝쩍거렸다는 소문도 있다. 18세의 메리는 52세의 노인[* 당시 기준으로는 노인에 해당했다.]이었던 루이 12세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. 그러나 결혼한 지 3개월 만인 1515년, 루이 12세는 침실에서 [[성관계|격심한 활동]]을 하다가 [[복상사]](...)했다. 이에 왕위는 루이 12세의 5촌 조카이자 사위가 되는 [[프랑수아 1세]]에게 가게 되었다. 아직 어린 메리 튜더는 오빠인 헨리 8세의 친구이자 신하인 [[찰스 브랜든]]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다. 동생을 예뻐했지만 메리는 공주의 신분이었고, 공주는 나라에 이익에 되는 결혼을 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왕의 허락을 받지 않은 이 결혼에 헨리 8세는 노발대발했다고 한다. 두 번째 결혼에서 메리는 총 4명의 자녀를 낳았고, 그 중 딸 프랜시스 브랜든은 이후 '9일의 여왕'으로 불리는 [[제인 그레이]]의 어머니였다. [[분류:프랑스 국왕]][[분류:나폴리 국왕]][[분류:밀라노 공작]][[분류:발루아오를레앙 가문]][[분류:1462년 출생]][[분류:1515년 사망]][[분류:돌연사한 인물]][[분류:생 드니 대성당 안장자]][[분류:루아레 출신 인물]][[분류:왕위 계승자]][[분류:오를레앙 공작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